swimming Dum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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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새집이 아주 좋다. 내방 창가에 감나무가지들이 올라와 있다. 조용 적막 촉촉.. 이런 새벽에 나는 내방이 숲속에 있는 산장같다고 느낀다. 쥬니도 적응이 빠르고 여러모로 새집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것저것 살림도 열심히해본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이 집에 온 후로 좀 ..매니악하게? 향초를 켜고 다닌다. 화장실에 하나. 오빠방에는 두개. 내방엔 초가 득실득실하게 그리고 이곳 저곳 킁킁거리고 좋아한다.

초값이 부담되어서 향초만들기 재료도 주문했다.

배꼽이 더 큰건가?

화를 못참겠다. 화는 나에게서 떠나지를 않는다. 얼마 전 종합편성중 하나의 프로였던것 같은데, 그곳에 나온 어떤 패널이 폭군인 남편이야기를 하며, 그러한 성격의 사람들은 아기때 모유를 못먹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역시 모유를 못먹었다. 이게 다 엄마때문인가? 이런 허무한 결말이? 엄마는 자길 탓하는것에 예민한 사람인데.

입맛이 없는 날들이 지속된다. 그렇다고 살은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움직이지 못하고있다.

항상 모든 음식의 일인분을 제일 먼저 먹어 치우던 나의 호기로운 전투적 식습관은 넉다운을 했다. 일인분을 다 먹는 것이 손에 꼽힐 정도다. 이건 정말 내 생애 대단한 변화 중의 하나다. 이런지 벌써 반 년이 다 되어간다. 이건 좋은 걸까?? 소식이 좋다고는 하지만. 라면도 맛없어서 못먹는다. 맛때가리가 없다… 그마나 아직도 보면 군침을 흘리는것은 간장게장… 어제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자꾸 으음~ 음!! 이런 소릴냈다.  

그렇다면 내 수호신이 나의 미친 식습관을 염려하여 이러한 처방을 내려주신걸까? 

소화능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일인분의 70프로를 먹을쯤 가슴을 치며 힘들어한다. 나의 오빠는 점차 나의 이러한 변화를 보며 은근 슬쩍 무서워하고 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아파서 죽게되면 쥬니를 잘 부탁한다고 했더니 그건 걱정말라고 했다. 

너무 낯선 템포의 일상이다.

이런 일상은 너무 낯설다. 

나에겐 낯설지만 멀리서 보면 별 것이 없어 억울하다.

난 지금 나의 낯설음에 대한 놀라움을 공감할 사람이 없다.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ㅡ 그냥 지나가는 것보단 잘 지내가길 바란다.

한 달. 아니 두 달?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지만 

잘 끝나길 빈다. 빌어본다

신께

잔잔한90년대풍 디스코음악같은 하루가 계속 되길바란다.

뿜고 나자빠지고 기면서 울고 비워내면 평화롭다.

모든건 지나가고 무뎌지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행위조차도 어떤 달라짐의 징후인 것을 안다.

안다. 헛똑똑인것도 알고 또 똑똑이라 불편함을 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는 것이 있다면 괜찮다는 것. 

너무나 현실

너무도 현실 

피부에 닿는 쓰라린 

그리고 다 깨져버린 환상 

벗겨진 환상

벗겨낸 환상.

12시간의 무중력상태를 지나

나의 시간은 다 깨져버렸다.

아, 나의 시간은 가고

너희들을 시간이 몰려오고.

나는 너희들의 시간에

너희들의 현실에

오도가도 못하고 갇혀

발을 동동 잠 못드네.

눈을 꼭 감아도 

이불을 뒤집어 써도

너희들은 나를 둘러싸 떠나질 않고,

나는 가끔씩 내몸에 비춰진

현실의 빛에

현실의 시간에

현실의 공기에

산화되고 없어지고 있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엇이든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나이 많은 겁쟁이들이 많다. 살아온 시간에 비해 너무 경험이 없다는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불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냉소적인 겉 껍질만 잘 팔려 나가고 있다. 겁쟁이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이먹음에 대한 경각심이 반대작용을 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내가 나이먹음을 의식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떠한 제한선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자유에 대한 책임을 미리부터 지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이젠 더이상 착하지도 않아서 화낼일도 너무 맣고 일일이 화내다 보니까 목이 쉬고 몸이 아프다. 착하지 않은 사람으로 사는 것은 이렇게나 힘들다. 내나이 스물 다섯, 이제부터는 슬슬 권모술수라는걸 써야 하는 시기가 온것인가 하는 새롭고 아주아주 참신한 생각이 들었다. 권모술수를 쓴다는것은 나로써는 아주 참신한 자기기만이기 때문에 이에 어느정도의 설렘마저 느껴진다.

미래에 펼쳐질지 모르는, 아니면 펼쳐질 나의 권모술수는 파도 결 같이 잘 훌렁 술렁 할까? 

개나줘버릴 가치들로 이렇게 쟀다가 저렇게 쟀다가 어차피 결론은 네가 견디기 힘들도록 싫다는 것뿐인데. 어른들의 특징은 수정이 안된다는 것에 있다. 일이 일어난 후엔 그냥 그렇게 된것이다. 수정은 없다. 못하고 그렇게 되는것도 싫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되는 것을 싫어 한다기보다 그 수정이란 행위를 견디지 못한다. 

어떤 일이 결정이 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나는 생각 보가 빠른 시간으로 결정하고 굉장히 오래도록 받아들인다. 이것은 비효율적인것일까? 과연?

나의 작업적의문은 거의가 

왜 그딴걸 내가 충족시켜줘야해? 라는 반박으로 가득했다.

지금도 달라지진 않았지만 내가 그럼 이걸 왜 봐줘야해? 라는 말에

그것은 말이야 라고 대답을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안한다.

봐주길 원하는 이유가 꼭 실용적이거나 어떤 깨우침을 주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다 봐줬다면, 고맙고 실로 그런 의문이 들었다면 그 의문에 답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묻지도 말고 그 자리를 뜨면 된다.

그러한 과정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이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예술은 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도 그것으로 무언갈 고발할 수 있어도 그것에 어떤 논리성립과 아귀가 맞아가는 것으로 귀결되는게 아니다.

엄청나게 복잡한 또는 정교하고 똑부러지는 논박의 과정이 지적함의와 사회적 메시지가 집약적으로 드러나있어도 그 최종 아웃풋은 너무나 논리가 성립되어서 완벽히 아귀가 맞아 떨어지기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성립되지않는 그 무엇이어야 한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점점 더 확고해진다. 충족시킬것은 오로지 작가자신의 목표와 최고지점이다. 지나친 예술지상주의를 반대하면 나타난 것들의 부작용으로 좋은 예술 나쁜예술이라는 이상한 기준같은 것이 생긴것같다. 공공과 사회와 어떤 명시적이고 선험적인 것들을 대략 가져와 ‘아우라 없음’의 아우라로 치장하고 있는것이 내가 보고있는 지나친 예술주의다.